사랑이 살린다
치열하게 혹은 꾸역꾸역 살아온 지난 해. 행복하지만은 않은 날들을 지나왔다.
어둡고 작은 방에서 아침이 오는 것을 눈꺼풀로 막아내려 했던 작고 무거운 슬픔이었던 날들. 서로를 알게 되고 위태로운 마지막 한 걸음을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기억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기억이, 사랑의 기억이 오늘도 나를 살린다. 사랑이 살린다.
그렇게 또 한 해를 살아냈다. 아주 잘했다. 아무리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어도 스스로에게 어색하더라도 칭찬해야한다.
우리에게 지난 한 해 큰 선물이 있다면, 새해를 시작하는 자리에 모여서 서로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며 그런 칭찬과 위로를 해줄 사람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로의 멱살을 끌고’와주었던 사람들이 모였다.
어색하게 근황을 이야기한다. 다들 말을 시작하기 전에는 조금 당황스러워하지만 막상 말을 하기 시작하면 다들 말을 잘한다는 게 우리의 특징이다. 기쁜 근황에는 축하의 박수를 쳐주고 힘든 근황에는 응원의 박수와 위로의 눈빛을 전한다.
어릴 적 추억의 뽑기 통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귀엽다고 생각했다. 다 큰 어른들이 아직도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을 볼 때 맑게 반짝이는 눈은 언제나 귀하다. 학교 앞 뽑기 기계에서 통이 굴러 나오면 통을 꼭 쥐고 제발 내가 원하는 장난감이 들어있기를 기도한 후에 열었다. 물론 원하는 게 나오진 않았지만. 오늘은 내가 원하는 것을 그 뽑기 통에 넣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각자의 소중한 소원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알맞게 넣기 위해서 본인만의 방법으로 접어 넣는 모습 또한 지켜봤다. 내 자신이 음흉한 사람으로 비치진 않을까 염려되지만, 그 염려와 맞바꿀 수 있을 정도로 꽤나 다양하게 착착 접어서 넣는 모습들이 귀여웠다. 우리는 다 커서도 이렇게 새로운 일을 자주 맞이한다.
사실 나는 밝은 형광등 밑에서 책상을 앞에 두고 나누는 시간보다 술잔을 앞에 두고 조금은 어두운 조명 아래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더 기대한다. 형광등 밑에서 흩어지는 웃음과 술집 조명 아래서 퍼지는 웃음은 다른 느낌을 준다. 자기 차례에만 말을 하던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말을 한다. 몸으로 맥주가 들어간다. 소주 속으로 맥주가 들어간다. 숟가락의 충격으로 인해 거품이 인다. 지켜본다. 웃는다. 응원하고 듣고 놀림을 받으면 난색을 표하면서도 즐겁다. 재밌는 약속들이 가득하다.
어떤 모임은 집에 돌아와 등을 대고 누우면 피곤이 몰려오지만, 오늘은 다르다. 웃음을 곱씹고 격려를 되새긴다.
올해의 큰 이벤트인 페미액션캠프에 대한 기대가 소로로 퍼진다. 2박3일간 나누게 될 눈빛은 어떨까, 코골이 소리에 괴로워하며 키득키득 웃음을 나눌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서로가 있다는 안도와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통에 넣지 못한 소원을 혼자 떠올려본다. 동글동글 굴려지며 성취에 대한 염원을 방울방울 맺어갈 우리의 소원이여.
23.1.14 한여넷, 페미스쿨 & 페미액션스쿨 신년회를 기억하며
곽수민
사랑이 살린다
치열하게 혹은 꾸역꾸역 살아온 지난 해. 행복하지만은 않은 날들을 지나왔다.
어둡고 작은 방에서 아침이 오는 것을 눈꺼풀로 막아내려 했던 작고 무거운 슬픔이었던 날들. 서로를 알게 되고 위태로운 마지막 한 걸음을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기억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기억이, 사랑의 기억이 오늘도 나를 살린다. 사랑이 살린다.
그렇게 또 한 해를 살아냈다. 아주 잘했다. 아무리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어도 스스로에게 어색하더라도 칭찬해야한다.
우리에게 지난 한 해 큰 선물이 있다면, 새해를 시작하는 자리에 모여서 서로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며 그런 칭찬과 위로를 해줄 사람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로의 멱살을 끌고’와주었던 사람들이 모였다.
어색하게 근황을 이야기한다. 다들 말을 시작하기 전에는 조금 당황스러워하지만 막상 말을 하기 시작하면 다들 말을 잘한다는 게 우리의 특징이다. 기쁜 근황에는 축하의 박수를 쳐주고 힘든 근황에는 응원의 박수와 위로의 눈빛을 전한다.
어릴 적 추억의 뽑기 통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귀엽다고 생각했다. 다 큰 어른들이 아직도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을 볼 때 맑게 반짝이는 눈은 언제나 귀하다. 학교 앞 뽑기 기계에서 통이 굴러 나오면 통을 꼭 쥐고 제발 내가 원하는 장난감이 들어있기를 기도한 후에 열었다. 물론 원하는 게 나오진 않았지만. 오늘은 내가 원하는 것을 그 뽑기 통에 넣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각자의 소중한 소원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알맞게 넣기 위해서 본인만의 방법으로 접어 넣는 모습 또한 지켜봤다. 내 자신이 음흉한 사람으로 비치진 않을까 염려되지만, 그 염려와 맞바꿀 수 있을 정도로 꽤나 다양하게 착착 접어서 넣는 모습들이 귀여웠다. 우리는 다 커서도 이렇게 새로운 일을 자주 맞이한다.
사실 나는 밝은 형광등 밑에서 책상을 앞에 두고 나누는 시간보다 술잔을 앞에 두고 조금은 어두운 조명 아래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더 기대한다. 형광등 밑에서 흩어지는 웃음과 술집 조명 아래서 퍼지는 웃음은 다른 느낌을 준다. 자기 차례에만 말을 하던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말을 한다. 몸으로 맥주가 들어간다. 소주 속으로 맥주가 들어간다. 숟가락의 충격으로 인해 거품이 인다. 지켜본다. 웃는다. 응원하고 듣고 놀림을 받으면 난색을 표하면서도 즐겁다. 재밌는 약속들이 가득하다.
어떤 모임은 집에 돌아와 등을 대고 누우면 피곤이 몰려오지만, 오늘은 다르다. 웃음을 곱씹고 격려를 되새긴다.
올해의 큰 이벤트인 페미액션캠프에 대한 기대가 소로로 퍼진다. 2박3일간 나누게 될 눈빛은 어떨까, 코골이 소리에 괴로워하며 키득키득 웃음을 나눌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서로가 있다는 안도와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통에 넣지 못한 소원을 혼자 떠올려본다. 동글동글 굴려지며 성취에 대한 염원을 방울방울 맺어갈 우리의 소원이여.
23.1.14 한여넷, 페미스쿨 & 페미액션스쿨 신년회를 기억하며
곽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