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성명서

논평2021.01.04 2021년,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중대한 재해를 멈추는 정치가 필요하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2021-01-04
조회수 771


[신년 논평] 

2021년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중대한 재해를 멈추는 정치가 필요하다


자영업자들이 생활고를 호소하고 있다. 3차 재난 지원금이 새해 11일부터 지급된다지만 집합금지 업종에는 300만원, 집합제한에는 200만원, 일반업종에는 100만원 씩 지급되는 재난 지원금으로는 한 달 치 운영비도 충당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을 닫으려면 대출금을 다 갚아야 하니 문을 닫을 수도 없다. 출구는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금융기관 압박, 리스회사 압박, 건물주 압박, 구매대금 압박, 생존 압박을 받는 소상공인의 위기는 소상공인만의 위기가 아니다. 취업자 대비 국내 자영업자 비율 25.4%(2017년 기준). 자영업자의 가족과, 자영업자가 고용하는 직원, 아르바이트의 생계까지 생각하면 생활고의 도미노 효과는 훨씬 크다. 민주당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벌 대상 범위를 완화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으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살리는 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완화가 아닌데 의도적인지 무능한건지 다리를 헛짚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내놓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안은 법 시행일 자체를 1년 뒤로 상정하고, 시행 이후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4년의 유예기간을, 100인 미만 사업장에는 2년의 유예기간을 두자고 하고 있다. 매년 2400여 명이 일하다가 죽는다. 그 중 한 명이 김용균이었고, 그 중 한 명이 이한빛이었다. 등록된 사업장 중 100인 미만 사업장이 99.5%. 50인 미만 사업장이 98.8%를 차지한다. 2020년 1월~9월 동안 중대재해의 84.9%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즉 정부의 안은 5년 동안 매일 6-7명의 노동자가 죽는 현실을 방치하겠다는 말이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닌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한껏 목을 세워 자랑하던 K-방역은 한계에 봉착했다. 2월 마스크를 사게 해달라는 진정을 무시하고 검찰총장과 힘겨루기 하는 사이에 동부구치소에서는 감염관리가 방치되어 있었고, 1월 4일 기준, 1068명이 확진되었다. 장애인 시설, 요양 시설 등 집단 격리 장소에서는 의료적 개입 없이 감염자들끼리 방치하여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발열이 나는 코로나 미감염 질환자는 격리 병동이 없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느라 시각을 다툴 때 전전긍긍해야 하며, 소아 격리 시설 수는 더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 1년 동안 코로나든 코로나가 아니든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시스템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고, 지금 그 결과 국민들이 죽고 있다.

학교, 학원, 공공기관 등이 문을 닫고 돌봄 역할이 가정과 개인에게 가중될 때 돌봄을 이유로 일을 그만두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다. 코로나19 이후 여성 취업자 감소폭이 남성의 1.5배 이상이다. 여성은 같은 조건으로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 힘들고, 구직 후 같은 일을 해도 남성보다 적게 받고, 위기 상황에 더 빨리 해고된다. 위기 상황에 더 빨리 구직을 단념하게 된다. 2020년 1∼8월 자살을 시도한 사람 중 20대 여성이 32.1%, 20대 여성 자살 사망자 수는 2019년 상반기 207명에서 2020년 상반기 296명으로 43% 급증했고, 2020년 상반기에만 총 1924명의 여성이 자살했다.

2020년 1월~8월 검거된 아동학대범죄건수는 3314건이었다. 정인이의 양부모는 세 번 신고 되었으나, 검거되지 않았으니 이 3314건에 잡히지 않을 터, 아동학대신고건수는 2018년 3만 6417건, 2019년 4만 1389건이었다. 신고 된 아동들의 사례를 살피고, 사후 모니터링하고, 아동에게 필요한 조치를 진행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 1곳이 전국 평균 기준으로 담당하는 아동 수는 13만 3,153명이다. 평균 10명 내외가 근무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절대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숫자다. 수많은 아동학대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동을 분리해도 보호할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국 학대아동 쉼터는 72곳, 쉼터 최대 인원 7명씩 모두 수용한다고 해도 들어갈 수 있는 아동 최대 수용인원은 504명에 불과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운영비는 벌금수입의 6%에 해당하는 범피기금으로, 학대히패아동쉼터의 설치·운영비는 복권기금으로 충당한다. 매해 일반예산으로 전환하여 편성할 것을 요구하지만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져 2021년에도 끝내 일반예산으로 수립되지 못했다. 자기 지역구 사업에 예산 챙기고, 기업 수익 챙겨주는 사이에 학대아동이 발굴되고 보호될 수 있는 예산과 시스템은 밀리고, 밀리고, 또 밀리고 결국 정인이가 죽었다.

학교급식이 중단되면서 친환경 농민들은 대책 없는 유통난에 직면했다. 농식품부 관료들의 은퇴 후 일자리로 이어지는 농수산물 도매법인의 불공정 가격 책정 시스템으로 농민들은 1년간 고된 농사의 결과 합리적 가격으로 노동의 대가를 보전받기는커녕 종자값, 퇴비값, 기름값도 보전하지 못한다. 농촌노동력의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비닐하우스 천막집에 월 40만 원 씩을 뜯기며 하루 12시간 14시간 중노동을 한다. 아파도 치료받을 수 없고, 추워도 어쩔 도리가 없어 죽는다.

그리고 병원이든, 공장이든, 사무실이든, 가정이든, 학교든, 농장이든, 그곳이 어디든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성폭력의 위협에 시달린다. 마주하는 공간뿐이랴. 사이버 공간에서 여성을 향한 폭력은 더욱 심각하다.

정부와 집권여당이 검찰개혁을 방패막이 삼아 조국일가 감싸기과 윤석열 내려치기를 하며 모든 정치 과제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사이 시민들은 매일매일 중대재해를 겪었다. 정부와 집권여당이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감싸기를 방조하고 오는 재보선과 대선 선거일정을 앞두고 졸속으로 당헌을 개정하는 데 열중하는 사이 피해자는 자신의 일상에서 지옥을 오가야 했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상실한 채 죽음에 이르렀다.

그런 2020년을 보내고 2021년 새해 정부와 집권 여당이 내놓는 메시지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인을 내세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개악하는 것이고, 노골적으로 자본과 권력에 기대어 각계 시민들의 일상을 내팽개친 전임 대통령을 사면하는 것이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현 정부와 민주당이 시대에 맞지 않는 정치세력임을 공언한다.

온오프라인을 망라해 성폭력 범죄를 근절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문화에 대한 법적 철퇴를 내려 산업재해와 가습기 살균제, 세월호 참사, 대형 화재 사고 등 중대 시민 재해를 멈추는 정치. 정규직, 비정규직, 하청, 재하청, 불법파견, 특수고용노동, 플랫폼 노동 등 온갖 구조적인 위계와 차별로 점철된 꼬리표를 넘어 노동현장에서의 평등을 이끌고, 또 그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성적 폭력과 젠더 불평등을 깨는 정치. 기후위기로 인한 주거, 에너지, 식량 등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전망으로서의 복지체계를 다시 구축하는 정치. 우리가 2021년 원하는 정치는 바로 일상에서 안전과 평등을 확장하고 그를 위해 탄탄한 복지체계를 마련하는 정치이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2021년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안전, 평등, 복지를 확장하는 정치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한 거침없는 정치행보를 해나갈 것이다.


2021.01.04.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