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성명서

논평2021.04.27. 국민 울분을 젠더 갈등으로 왜곡하는 남성 정치인들. 자네들은 말이지 젠더차별주의자야!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202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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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국민 울분을 젠더 갈등으로 왜곡하는 남성 정치인들. 자네들은 말이지 젠더차별주의자야!


4.7 재보궐 선거가 끝나고 기성 정당들의 남성정치인들은 “20대 남성들”의 표심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국민의힘 최고위원 30대 정치인 이준석은 “20대 남자 자네들은 말이지”라며 ‘형님 모드’로 자당 승리의 축에 20대 남성들의 지지가 있음을 드러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과 최고위원인 자신이 3년 전부터 꾸준히 ‘젠더갈등’의 문제를 이슈화했던 점을 상기시키며 문재인 정부가 ‘젠더갈등’을 군가산점제 등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젠더갈등’을 만드는 ‘시대착오적인 페미니즘’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시대착오적인 페미니즘’이란 여성할당제 등의 수치적 평등을 주장하는 세력이라 언급했다.


과연 그러한가?

4.7 재보궐 선거 직전인 지난 2월 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간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전국 19세 이상 성인 1,478명을 대상으로 ‘2021년 한국 사회의 울분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국민의 58.2%가 ‘만성적 울분’ 상태인데, 소득이 낮거나 무주택자일수록 울분 정도가 높게 나타났다. 전년도에 견주어 무려 약 11%정도 울분지수가 올랐다. 국민들을 가장 울분케 한 사회정치적 이유로 1위는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 2위는 정부(입법·사법·행정)의 비리나 잘못 은폐, 3위는 언론의 침묵·왜곡·편파보도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4.7 재보궐 선거 출구조사에 응답한 20대 남성들의 반응도 이와 유사했다. 수년 간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국민의힘에 투표했다는 어느 20대 남성 유권자는 “민주와 진보 운운하더니 성희롱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고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실망했다.”고 응답했다.

20대 남성을 포함해 다수의 국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에 열광했다. 한 때는 80%를 상회하는 지지를 문재인 정부에게 보냈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비롯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검찰총장에 대한 월법적 징계 추진 등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을 통해 ‘스펙과 재산축적의 기회는 그들에게만 주어졌고 그 과정은 불공정했으며 결과는 비리와 부패였다’고 한탄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잘못은 은폐되었고 언론은 침묵하거나 작의적인 왜곡과 편파보도로 진실을 호도했다.

한국사회 국민울분은 계급적 불평등으로 취약해지는 국민생존권에 대해 민주적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 기득권 정치 세력에 대한 실망과 분노의 응결체이다. 4.7 재보궐 선거의 결과는 이런 국민의 정치 감정이 표로 드러난 것이다.


견고한 양당체제에서 사표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성들의 정부심판 표심이 제1야당인 국민의힘으로 쏠린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적 어부지리를 전리품으로 독식하려는 국민의힘 이준석 최고의원의 간사함이 가소로울 뿐이다.

계급문제를 젠더갈등으로 치환함으로써 기득권 정치로 향하는 계급적 요구와 분노의 화살을 명백하게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인 여성에게 돌리는 것이다. 불평등한 사회적 격차를 조정하는 공정과 형평의 가치를 조율해야 하는 정치권의 역할을 해태하면서 불평등함의 문제를 사회적 약자 간의 치킨게임으로 만들려는 사악한 정치를 하고 있다.


2020년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74.5%로 남성의 진학률 66.6%보다 높다. 비례해서 졸업율도 남성보다 여성이 높다. 노동의사와 노동능력을 갖추어도 고용되지 않으면 잉여적 존재가 된다. 그게 자본주의다. 노동의사와 능력이 있음에도 성차별적 고용관행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고용경쟁에서 불리했다. 그래서 여성들은 공정과 평등을 요구하고 있다.

성차별적인 고용관행은 사기업뿐 아니라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2014년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은 “여성은 출산과 육아휴직 때문에 업무 연속성이 단절되기에 면접에서 조정을 통해 여성을 탈락시켜야 한다”고 했다. 실제 1위 순위의 여성을 8위로 순위 변경 시키는 등 합격권 여성 7명을 불합격처리했다. 2015년 국민은행 인사팀장은 신입 행원 채용과정에서 남성 합격자 비율을 높일 목적으로 남성 지원자 113명의 평가점수는 높이고 여성 지원자 112명의 점수는 낮추는 부당행위를 자행했다. 이들은 모두 법적 처벌을 받았다. 법적 처벌까지 가지 않은 일상의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동아제약 면접에서 벌어진 성차별과 배제를 보라.

고용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은 생존경쟁이다. 고용의 기준이 되는 스펙을 날조하거나 부당 거래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공정조차 짓밟는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다. 먹다 버린 껌 다시 주워 먹자는 식으로 언급하는 군가산점제는 이 자본주의적 공정조차 위배하는 반헌법적 제도이다. 그리하여 여성과 미군필의 남성에 의해 위헌소송까지 갔고, 폐지된 것이다.


군가산점제의 부활을 꿈꾸는 자들이 말하는 한국식 징병제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특정 성별과 특정 조건을 갖춘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다. 현역 군필자의 경험도 매우 다양하다. 그럼에도 군필자라는 이유로 고용출발선에서 ‘아묻따(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가산점을 주는 것은 고용차별제도일 뿐이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다수 20대 남성들이 징병제에 의해 원치 않는 시간동안 복무함으로써 고용사회로의 진입에 불리하다는 불만은 타당하다. 징병제를 둘러싼 사회적 폐해는 매우 심각하다. 우리사회는 징병제 폐지를 주장하고 관철시켜야 한다. 국가주의적 병영제도의 폐해를 만든 것은 여성이 아니라 국가주의적 시스템이다.

한편 징병제로 인해 불이익을 보상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는 없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과하다.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해서 공기업이나 민간기업 등에서 그동안 군경력을 승진자격으로 인정했고 군 경력 호봉을 통해서 보상해왔다. 군 경력 승진자격제도를 폐지해도 군 경력 호봉은 여전히 인정된다.

군필자가 고용사회에 진입하기는 군미필 남성이나 여성들보다 훨씬 수월하다. 통계 지표가 그것을 말해 준다. 2020년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의 현황표를 보면 전 세대에 걸쳐 남성은 여성들보다 월등하게 더 많이 고용되어 있다. 남성의 평균 고용율은 25세 이후 65세 까지 평균 73%가 넘는다. 가장 노동력이 왕성한 30세에서 49세까지는 90%에 육박한다. 이에 비해 여성 고용율은 53% 정도이다. 여성이 가장 많이 고용된 상태의 세대는 50대이다. 경력단절을 거치고 낮은 임금으로 고용되는 것이다. 직장 내 안정성의 지표를 보여주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성별 비율은 또 어떠한가? 정규직의 단지 38%만이 여성이다. 정규직 여성도 남성 임금 기준의 약 67%의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다.


그뿐이랴? 한국사회학회 논문집 <한국사회학> 제53집(2019년)에 실린 캔사스대 사회학과 김창환 교수와 오병돈 연구원의 논문 ‘경력단절 이전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가?’를 보면, 학교와 학과, 학점 등 ‘스펙’이 모두 같은 여성도 남성의 82.6%밖에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권 대학 출신 여성의 경우 동급 대학 출신 남성들과 견주어 보면 불과 78.3%정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대학을 나오고 같은 학과를 졸업해서 시험을 통해 같은 직장에 들어가도 남성을 100으로 했을 때 78.3%밖에 받지 못하는 요상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평균적으로 동일시간 동일가치노동을 하는 여성노동자는 남성노동자에 비해 67%정도밖에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 33%를 기업은 이윤으로 착취하고 그 중 일부를 군경력호봉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전 세대 여성들이 고용현장에서 차별 받았고 있는데도 ‘20대 남성의 불만’을 핑계 삼아 20대 남성이 여성들로부터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노동현장의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임원 및 간부의 성별 비율은 말 그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공공기관의 여성관리자비율은 18%를 조금 넘고 지방공기업의 경우는 7%에도 미치지 못하며 민간기업의 경우가 가장 높음에도 21%에 그치고 있다. 임원 및 간부의 여성할당제가 적용되고 있다는 말조차 무색할 지경인데 할당제 주장이 ‘시대착오적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착오적 발언을 한다. 무식한 것이 아니라면 염치가 없는 거다.

한국에서 20세-25세 사이 특정한 세대만이 남성보다 여성이 5%내외 더 고용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추컨대 남성 군복무 기간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남성의 노동력이 빠진 자리에 남성 기준 임금의 67%의 임금으로 여성을 고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시적이고 저렴한 산업예비군으로 20대 여성을 고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현장에서 발생하는 성차별과 성폭력의 지표는 또 어떠한가?

4.7재보권선거의 원인이 된 직장 내 성희롱 폭력사건을 통해 드러난 조직문화는 언제든지 여성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을 박탈 수 있는 음험한 공기로 존재한다. 2018년 한국여성변호사회에서 고학력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는 참담하기 까지 하다.

2018년 4월부터 10월까지 변호사 교수 의료인 언론인 회계사 등 1,0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0.1%가 일상적인 성희롱과 성추행 시달리고 있음을 알렸다. 차별과 폭력은 기본적으로 힘의 세기를 달리하는 집단에서 발생한다. 노동현장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취약한 존재이다.

이것이 사실이고 현실이다. 그럼에도 남성정치인들은 20대 남성의 울분과 분노 상대적 박탈감의 원인이 자본주의적 성차별에 문제제기하고 있는 여성들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이라고 왜곡을 넘는 날조를 하고 있다.

게다가 20대 남성이 동일한 집단이지도 않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적 자산이 있는 남성들은 고용을 둘러싼 경쟁에서 이미 우위에 있다. 남성 간 경쟁은 내면화하면서 성차별적 방어벽을 허물고 등장하는 여성들에게 남성프리패스를 들이밀면 되겠는가?


2021년 한국의 노동현장에 존재하는 유리천장은 방탄유리에 준한다. OECD 가입국 중 29개 국의 유리천장지수를 보면 한국은 29개 국 중 29위다. 유리천장지수는 총 10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등교육 졸업률의 성 격차, 경제활동참가율의 성 격차, 성별임금격차, 여성 관리직 비율, 여성이사 비율, 여성 국회의원 비율, GMAT수험생 중 여성비율, 엄마의 육아휴직 보장기간, 아동보육비용, 아빠의 육아휴직보장기간이 그것이다. 이중 앞에 6개 항목은 26위에서 29위이다. 아동보육비용과 아빠의 육아휴직보장기간만이 그나마 2위와 3위이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이 세계경제포럼에서 선정하는 성 격차지수 108위의 위용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미국 대법관이자 여성 인권 옹호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사망했다. 그녀는 생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여성에게 혜택을 달라는 게 아니다. 여성의 목을 짓밟고 있는 발을 치워달라는 것일 뿐이다.” 지금 한국 여성들은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혜택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하지 말하는 거다.


한국사회의 실상을 알리는 명백한 성 불평등한 지표에는 눈 감고, 20대 남성의 정치사회적 분노를 젠더갈등으로 치환하려는 세력이야말로 낡아빠진 남성중심주의 사고에 빠져 있는 젠더차별주의자들이다.

20대 남성들이 갖는 정당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낡아 빠진 가부장적 프레임에 가두려는 기득권 정치인들의 ‘형님정치’에 놀아나는 일부 언론들의 작태 또한 자기반성 없는 정치인과 궤를 같이 한다.


4.7 재보궐 선거의 결과는 페미니스트 정부를 자처했지만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 폄훼하고 당헌까지 바꾸어 시장후보를 낸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의 선거이자 미투 선거였다. 페미니스트 정부라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정부가 아니라서 반대한 것이다.

여도 야도 아닌 제3의 후보를 선택한 20대 여성 15.1%의 투표야말로 이번 4.7 재보궐 선거가 남긴 의미심장한 정치적 행보이다. 페미니스트 정부라서 지지했고 페미니스트 정부가 아니라 반대했고, 그 대안을 기성정당에서 찾을 수 없는 여성들이 척박한 대지에 새로운 표밭을 일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한국정치사에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다. 기성정당에 뿌린 씨앗이 독초가 되어 돌아오는 것을 본 젊은 여성들이 ‘다른 선택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번 4.7 재보궐 선거 이후 ‘이대남’이니 ‘군가산점제 부활’이니 떠드는 민주당은 참패의 교훈이 무엇인지조차 깨우치지 못하고, 국민의힘은 횡재처럼 얻은 어부지리를 가지고 형님정치의 밑밥으로 쓰려고 하고 있다. 15.1%의 가능성을 만든 여성들이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자네들은 말이지. 젠더차별주의자야!”라는 말 뿐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낡아 빠진 기득권 정치인들에게.

 

2021년 4월 27일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