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성명서

논평2021.03.03. 사회의 편견과 차별, 거대한 폭력에 맞서 빛나도록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던 고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빕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2021-03-03
조회수 1370


[논평] 사회의 편견과 차별, 거대한 폭력에 맞서 빛나도록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던 고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빕니다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하사가 세상을 떠났다. 억장이 무너지는 밤이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이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 만이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건 배려도, 포용도, 관용도 아닌 그저 모두가 마땅히 보장받아야할 기본권의 문제이다.


2021년 2월 18일. 금태섭 당시 서울시장 후보는 퀴어문화축제를 정치판의 말로 올려놓았다.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는 ‘거부할 권리’를 이야기 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인식을 공공연히 드러내었다. 모두의 이목이 주목하는 정치인들의 입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퀴어문화축제와 성소수자의 설자리를 난도질 하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존재의 문제가 너무 쉽게 부정되고 공방이 되어버리는 혐오 사회 속에서 차별과 편견, 혐오와 싸우며 매일 매일을 살아내 온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변희수 하사는 2019년 11월 성전환 수술을 하고 12월에 귀대한 뒤 다른 성별로 군복무를 지속하기를 희망했으나 군은 강제 전역시켰다. 육군본부에 3개월 늦춰 전역 심사위원회를 열 것을 권고한 인권위의 긴급구제 결정을 무시한 처분이었다. 긴급구제 신청이 있던 해 말, 인권위는 대한민국 육군의 강제 전역 처분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결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육군당국은 인권위 전원위원회 결정에 대해서도 ‘전역은 적법한 행정처분’이었다며 인권위의 권고를 무시하며 ‘전역 처분 취소 행정소송 결과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육군이 인권을 침해했다고 UN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공식적으로 판정했지만 변희수 하사는 복귀하지 못한 채 행정소송 절차를 밟고 있었고, 오는 4월 첫 변론 기일을 앞두고 있었다. 변희수 하사가 대한민국 육군에 의해 부당하게 침해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사이, 변희수 하사 강제전역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던 자는 국방부 장관이 되었다.


대한민국 육군은 앞장서서 인권을 해치고, 대한민국 행정부의 수장은 인권침해처분에 문제의식 없이 그 책임자를 영전시킨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앞다투어 혐오를 조장하고, 사회는 혐오에 동조한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살아 숨쉬는 존재의 자리를 빼앗아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는 폭력이다.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하사는 한국사회에 사는 퀴어라서 죽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정치가 바로 지금, 연이은 부음을 온 국민이 듣게 하고 있다.


말 돌리고, 회피하고, 부정하던 정치인들아, 죽음의 문턱을 일상으로 살고 있는 이들을, 이들에게 쏟아지는 혐오와 차별을 진정으로 바라본 적이 있는가. 차별로 인해 고통 속에 스러져 가는 국민들의 소식에도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대한민국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지난해 3월 대한민국 성인 90%가 찬성하고, 같은 해 6월 발의되었던 그 차별금지법이 말이다.


사회의 편견과 차별, 거대한 폭력에 맞서 빛나도록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존재를 가리는 사회에서 부단히 우리가 있음을 드러내며 매일을 투철하게 살고 있는 분들께, 부디 함께 살아내어 죽음의 정치를 끝내자 말하고 싶다.


2021.03.03.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