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평]
부산고법 형사2부(재판장 박운삼) 재판부는
피해자의 공포를 재단하지 말고, 피해자에 대한 편견에 기대어 발언하지 말라.
“보통 피해자가 그런 것으로 겁을 먹지 않죠.”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에 대한 보복 협박 사건 항소심에서 재판장이 한 것으로 알려진 이 발언은 우리에게 묻는다. 도대체 ‘보통 피해자’란 누구인가. 그리고 피해자가 느끼는 공포를 누가 감히 대신 판단할 수 있는가.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단순한 말실수나 표현의 부적절함으로 치부할 수 없다고 본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법부의 오래된 통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얼마나 두려워해야 ‘정상적인 피해자’인가. 가해자가 다시 죽이겠다고 말했을 때, 얼마나 공포에 떨어야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피해자가 침묵하면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목소리를 내면 왜 언론 플레이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피해자에게 남는 선택지는 무엇인가.
피해자에게는 정해진 ‘피해자다움’이 없다.
특히 이 사건은 이미 피해자에게 중대한 강력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보복 협박이 문제 된 사건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맥락을 외면한 채 “보통 피해자는 그렇게 겁먹지 않는다”는 식으로 피해자의 공포를 일반화하는 것은 피해자의 경험을 축소하고 사건의 심각성을 희석할 위험이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피해자의 언론 활동을 두고 “피해자도 언론 플레이를 상당히 했다”는 취지의 발언이 있었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알리고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것과, 피고인이 자신의 책임을 줄이기 위해 ‘피해자의 언론 플레이’를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를 동일한 언어로 다루는 순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말하고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 행위 자체가 마치 잘못인 것처럼 취급될 수 있다.
우리는 재판부에 피해자의 편을 들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편을 들라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편견의 편에 서지 말라는 것이다. 재판부의 역할은 ‘평균적인 피해자’를 상정해 피해자의 감정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행동을 피해자다움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과 증거를 살피고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재판부의 역할이다.
사법부의 말은 가볍지 않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에게 법정은 자신의 피해를 다시 설명하고, 자신의 공포를 다시 증명해야 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재판부의 한마디가 피해자에게 “네가 느낀 공포는 과장된 것”이라는 메시지로 전달된다면, 그것은 사법절차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장벽이 된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요구한다.
재판부는 ‘보통 피해자’라는 허상의 기준으로 피해자의 공포를 재단하지 말라. 피해자의 행동을 ‘피해자다움’이라는 통념으로 평가하지 말라. 피해자의 목소리를 ‘언론 플레이’라는 말로 흠집 내지 말라.
공정한 재판은 피해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에게 불리한 편견 없이 사실과 증거를 바라보는 것이다. 피해자가 사법체계를 믿고 법정에 설 수 있어야 한다.
2026년 9월 11일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논평]
부산고법 형사2부(재판장 박운삼) 재판부는
피해자의 공포를 재단하지 말고, 피해자에 대한 편견에 기대어 발언하지 말라.
“보통 피해자가 그런 것으로 겁을 먹지 않죠.”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에 대한 보복 협박 사건 항소심에서 재판장이 한 것으로 알려진 이 발언은 우리에게 묻는다. 도대체 ‘보통 피해자’란 누구인가. 그리고 피해자가 느끼는 공포를 누가 감히 대신 판단할 수 있는가.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단순한 말실수나 표현의 부적절함으로 치부할 수 없다고 본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법부의 오래된 통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얼마나 두려워해야 ‘정상적인 피해자’인가. 가해자가 다시 죽이겠다고 말했을 때, 얼마나 공포에 떨어야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피해자가 침묵하면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목소리를 내면 왜 언론 플레이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피해자에게 남는 선택지는 무엇인가.
피해자에게는 정해진 ‘피해자다움’이 없다.
특히 이 사건은 이미 피해자에게 중대한 강력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보복 협박이 문제 된 사건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맥락을 외면한 채 “보통 피해자는 그렇게 겁먹지 않는다”는 식으로 피해자의 공포를 일반화하는 것은 피해자의 경험을 축소하고 사건의 심각성을 희석할 위험이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피해자의 언론 활동을 두고 “피해자도 언론 플레이를 상당히 했다”는 취지의 발언이 있었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알리고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것과, 피고인이 자신의 책임을 줄이기 위해 ‘피해자의 언론 플레이’를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를 동일한 언어로 다루는 순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말하고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 행위 자체가 마치 잘못인 것처럼 취급될 수 있다.
우리는 재판부에 피해자의 편을 들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편을 들라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편견의 편에 서지 말라는 것이다. 재판부의 역할은 ‘평균적인 피해자’를 상정해 피해자의 감정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행동을 피해자다움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과 증거를 살피고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재판부의 역할이다.
사법부의 말은 가볍지 않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에게 법정은 자신의 피해를 다시 설명하고, 자신의 공포를 다시 증명해야 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재판부의 한마디가 피해자에게 “네가 느낀 공포는 과장된 것”이라는 메시지로 전달된다면, 그것은 사법절차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장벽이 된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요구한다.
재판부는 ‘보통 피해자’라는 허상의 기준으로 피해자의 공포를 재단하지 말라. 피해자의 행동을 ‘피해자다움’이라는 통념으로 평가하지 말라. 피해자의 목소리를 ‘언론 플레이’라는 말로 흠집 내지 말라.
공정한 재판은 피해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에게 불리한 편견 없이 사실과 증거를 바라보는 것이다. 피해자가 사법체계를 믿고 법정에 설 수 있어야 한다.
2026년 9월 11일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