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성명서

성명서2021.12.29.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의 행보에 대한 입장문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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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의 행보에 대한 입장문


지난 20일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직을 사임하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으로 일하게 되었음을 알렸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신지예 전 대표의 행보와 관련해 조직적 논의와 의결을 못한 채 이 사태를 맞게 되었다. 이에 긴급 운영위원회를 열어 회원들에게 직접 경과를 설명하고 이 사태와 관련한 회원들의 지혜를 모으기로 했다.

27일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회원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 신지예 전 대표의 행보에 대한 평가와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의 나아갈 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총 17명의 회원이 함께 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운영위원회는 가능한 회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하며 입장을 정리하였다.


첫째, 신지예 전 대표의 정치적 행보는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의 공식적 논의 단위인 운영위원회를 통해 논의되고 결정되지 않은 개인적 행보였다. 이런 행보는 조직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행위였다는 데에 이견이 없으며 비판 받아 마땅하다고 평가했다.


둘째, 신지예 전 대표의 윤석열 캠프 합류를 페미니스트 정치인의 변절로 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신지예 전 대표가 페미니스트로서 그간 주장했던 신념들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며, 이번 대선에서 양당 구조를 깰 수 없다는 한계 상황에서 윤석열 후보가 n번방방지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등 여성인권을 공약화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신지예의 정치적 행위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그 개인의 몫이다.


셋째, 신지예 전 대표의 윤석열 캠프 결합에 대해서는 다면적으로 평가했다.

“여성주의 운동 및 정치세력이 이야기해왔던 사회적 과제를 관철시키기 좋은 정치구도를 만드는 데 더 유리한 정치적 행보이지 않나”라고 하며 “보수 진영 안에서 차별금지법이나 장애인 인권을 말할 수 있다는 게 신선하고 진영을 떠나서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견과 이에 동의하며 “진보 보수를 떠나 판을 마구 뒤흔드는 것이 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성인권, 장애인권, 차별금지법 등을 어느 당이든 이걸 받는 당이 있다면 국민의 힘이어도 지지하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민주당이 정말 정신을 차리면 좋겠고 진보도 더 정신을 차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발상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평가가 있었다.

반면 “신지예 전 대표가 양당체제를 계속 비판하고 국민의힘도 계속 비판했고 아무리 민주당이 여러 문제가 많았지만 갑자기 이렇게 민주당을 막기 위해 국민의힘에 갔다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쌓아왔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민주당은 적어도 하는 척이라도 하는 정당인데 반해 국민의힘은 그렇지도 않은데 신지예 한 명 들어가서 바꿀 수 있을까. 원칙도 지키지 못하고, 실질적 실리도 얻기 어려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는 평가도 있었다.


보다 심정적인 평가들도 있었다. 

“신지예 전 대표의 이러한 선택으로 그간 신지예 전 대표를 지지했던 20-30대 여성들의 정치적 회의감이 계속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고 답답했다”며 “지금까지 모든 선거를 사람들의 마음과 도움을 얻어서 치러 왔고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는 것은 그 많은 사람들이 모아준 마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신지예 전 대표는 그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또 한편으로는 “사실은 여태까지 나서줘서 고마웠다. 내가 못하는 것을 내가 나설 수 없는 것을 나서줘서 고마웠다. 그래서 지지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줘서 고마움이 있었는데 다른 길을 간다고 하니 여러가지가 고민이다. 여태까지 신지예의 정치에 탑승해 갔는데 누가 앞서나가는 정치가 아니라 같이 가는 정치가 어떻게 가능할까 그런 고민이 생겼다”는 의견도 있었다. 더불어 “신지예라는 페미니스트 여성정치인을 우리도 필요로 했다. 페미니스트 의제를 선거라는 국면에서 대표해서 외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열심히 했다고 본다. 척박한 현실 정치에서 그것을 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다”는 평가도 있었다.


넷째, 여성운동가나 여성정치인이 영입정치를 통해 양당기득권 정치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구조와 여성정치인이 정치할 수 있는 토대에 대해 성찰적으로 평가했다.

“신지예라고 하는 2030 젊은 세대 페미니스트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보수에 영입되는 것이 정치적 사건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어렵게 만든 젊은 여성 정치인인 신지예를 빼앗긴 것 같다. 신지예라는 인물을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건 쉽다. 비판하긴 쉬운데 그러면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지를 못 볼 수 있다. 우리 자산이 너무 척박하다. 여성정치인이 제3지대에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경제적, 관계적 빚 없이는 불가능하다. 올바른 일을 하면서 구걸하는 사람이 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럼 사람을 빼앗기지 않고 양당정치를 깨면서 영입으로 소진시키지 않는 정치가 무엇인가, 그걸 고민하는 역할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가 해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전의 시간들을 반추해보면 “여성할당제 도입까지만 하더라도 초당적 여성정치연대가 가능했는데, 2010년부터 점점 연대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여성 정치인들이 남성중심 조직구조에서 소모되고 찢어지는 형태로 진행되었다”며 ‘차이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함께할 수 있는 교집합을 찾아 연대하며 여성정치를 묶어줄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라며 신지예 전 대표의 행보에 대한 성찰적 기반 위에서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의 역할과 지속의 이유를 찾아보자는 의견도 개진되었다.


페미니즘은 정치진영을 넘는 운동이며, 페미니스트의 정치적 행동에 대해 ‘더 좋은 페미니즘’, ‘올바른 페미니즘’을 운운하며 페미니즘의 위계를 만들어 심판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다만 가부장 정치권력에 의해 구현될 수 있는 성평등 사회의 한계를 직시하고, 가부장 정치권력을 깨는 페미니즘 운동과 정치의 토대를 만들기 위한 모색과 연대가 필요할 뿐이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현실의 정치와 여성운동의 토대에서 가부장정치의 산실 중 하나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곁으로 간 신지예 전 대표의 행보에 깊은 유감과 안타까움을 표한다. 그러나 신지예 전 대표가 ‘페미니스트 신지예’를 정치적으로 필요로 한 보수의 요청에 응하기 전 그의 선택을 막을 다른 대안과 자원을 여성주의 정치와 운동의 영역에서 함께 제시할 수 있었는지도 성찰하는 바이다.

신지예 전 대표의 개인적 행보가 갖는 의미를 둘러싼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회원 긴급토론회를 통해 우리 조직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더불어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인해 충격과 회한을 갖게 된 회원들이 서로를 돌보고 보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긴 호흡으로 양당 중심의 가부장정치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이념은 페미니즘이며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여성의 정치세력화의 현실과 조직의 역할, 역량을 근본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2021.12.29.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