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성명서

성명서2024.04.05. 성차별을 막는 유권자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 4.10 총선 사전투표에 부쳐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2024-04-05
조회수 1077


4‧10 총선 사전투표에 부쳐

성차별을 막는 유권자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22대 총선만큼 아수라장인 선거가 있었던가? 여야를 막론하고 공천에서부터 선거운동까지, 한국 사회가 그 기반으로 서 있던 역사‧윤리‧평등에 대한 합의와 신뢰를 모두 무화시키고 저열한 공방만이 난무하고 있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22대 총선은 더욱 문제적이다.

 

첫째, 여성 할당제를 지킨 정당이 있는가?

 

지역구 후보 85.8%가 남성이며 여성 후보는 14.2%에 불과하다. 21대 총선 때보다 4.9% 하락한 수치이다. 기득양당의 지역구 여성 후보 공천 비율은 더불어민주당이 16.73%, 국민의힘이 11.81%에 불과하다. 지역구 후보를 낸 정당 중 여성 추천 30%를 지킨 정당은 녹색정의당이 유일하다. 극심한 성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여성 할당제는 적지만 꾸준한 상승을 기록해오다 22대 총선에서 처음 퇴보를 맞았다. 비례대표 후보는 그나마 50% 의무이기에 공천을 유지했다. 개혁신당 이주영 총괄선대위원장은 여성 할당은 불필요하다며 여성 할당제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권고’와 ‘인센티브제’로 접근한 지역구 여성 할당제는 제도 시행 20년 동안 단 한 번도 20%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것이 공정한 경쟁의 결과인가? 여성 할당제 폐지 논의는 지역구 여성 후보 공천이 50% 이상을 넘을 때에나 가능하다.

 

둘째, 성범죄 가해자들을 비호한 변호사들의 출마 문제이다.

 

미투 운동 이후 변호사 업계는 이른바 ‘성범죄 변호 시장’이 호황을 맞고 있다. 가해자가 범행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을 유도하여 감형으로 이끄는 대신, 비싼 수임료를 받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고, 반성문을 대신 써주고, 여성단체에 후원하도록 하는 등 술수를 전수해주었다. 더불어민주당 조수진, 국민의힘 경기 시흥갑 정필재, 개혁신당 천하람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피고인에 대한 변호를 넘어 성범죄 가해자를 ‘비호한’ 변호사들이다. 가해자에게 더 쉽게 공감하는 자, 피해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자, 변호사의 직업윤리를 저버린 자들에게 입법권이 주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셋째, 비동의 강간죄를 부정하고 있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성가족부 폐지로 ‘이대남’의 표심을 모으더니, 2024년 총선은 ‘비동의 강간죄 삭제’로 합의를 본 모양이다. 국민의힘, 개혁신당은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면 비동의 강간죄가 입법화될 것’이라며 공세적인 메시지를 띄웠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동의 강간죄를 10대 공약에 포함시켰다가 “실무적 착오”였다며 하루 만에 철회했다. 

여성가족부의 성폭력 안전 실태조사(2022)에 따르면 강간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인한 경우보다 가해자의 강요’(41.1%), ‘가해자의 속임’(34.3%)에 의한 피해가 더 많았다. 2022년 4,765건 강간상담을 분석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에 따르면 명시적 폭행 협박이 없는 경우가 62.5%였다. 강요, 속임, 지위 이용, 그루밍, 폭언, 괴롭힘, 경제적 속박, 술과 약물 등이 동반되어 강간이 행해지는 것이다. ‘피해자의 저항이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죄로 인정하는 현행 법을 계속 고수한다면 이는 다수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방관하는 것이다.


넷째, 위력 성폭력 사건의 2차 가해자들의 출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안희정 사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던 조승래 후보를 대전 유성갑에 공천했다. 위력성폭력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호명하며 피해자의 피해 신고 사실조차 의심하고 자당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당헌도 바꾸는 무리수를 두더니, 이번 22대 총선에서는 반성할 의사도 능력도 없음을 드러냈다.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으로 구치소에 수감 중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끄는 소나무당 비례대표 명부에는 안희정 전 지사가 무고하다는 주장을 펼쳤던 안티페미니스트 권윤지 후보가 비례 순번 5번에 이름을 올렸고, 바로 앞 순번에는 박원순 사건의 2차 가해자 정철승 변호사가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권윤지 후보는 비동의강간죄에 대해 여성을 잠재적 살인자로 만드는 법이라는 황당한 논리와 함께 성매매와 포르노도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위력성폭력 사건의 2차 가해자들이 총선 후보로 무분별하게 나서며 성폭력 고발에 대한 조롱과 성적 대상화를 고착하는 논리가 정치적 메시지로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총선이 여성을 비하하고 삭제하고 있다.

 

양대 거대 정당이 앞장서 여성 비하와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재명 당대표는 선거유세에서 “살림은 역시 여성들이 잘한다”며 성역할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구태적인 발언을 하거나 상대 당의 여성 후보를 “나베”(일본어로 여성에 대한 멸칭으로 쓰는 혐오 표현)로 부르고 “매만 때리고 사랑은 없는 계모” 운운하며 모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보여주었다. 자당 후보들의 막말에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인가? 수원정 김준혁 후보의 여성 비하 발언은 듣는 이의 귀를 의심하게 했다. 역사학자 출신이라는 자가 근현대사의 질곡에서 위태로운 삶을 살았던 여성들을 조롱하고 시시덕거린 작태는 할 말을 잃게 한다. 성착취 피해를 입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이화여대 학생들에게 모멸감을 주었다. 조국산천 운운하며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다. 여성계를 비롯해 각계 비판이 줄잇고 후보 사퇴 요구가 빗발치는데도 민주당은 묵묵부답이다. 이는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 여성 모두에게 모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국민의힘 역시 더 나을 게 없다. 광주 동남을 박은식 후보는 “전쟁 지면 집단 ㄱㄱ(강간)이 벌어지는데 페미니즘이 뭔 의미가 있는데?” “결혼과 출산의 주된 결정권자는 남자”라며 과거에 SNS를 통해 저열한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상식 이하의 후보를 공당의 비상대책위원으로 임명하고 공천까지 한 국민의힘이 여성 유권자의 표를 얻겠다는 태도야말로 몰염치하다.

 

여성을 비하하는 수준은 도긴개긴, 지역구 후보를 제일 많이 내는 두 당의 성평등은 주요 정책 키워드에서 배제되었다. 거대 양당의 퇴보는 총선 여론의 성평등 담론의 양과 질을 모두 크게 하락시켰다. 4월 5일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된다. 성평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성차별을 막는 유권자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 여성할당제를 지키지 않은 정당에 투표하지 말자.

둘. 성범죄 비호 세력에 투표하지 말자.

셋. 비동의 강간죄 개정을 막는 후보에게 투표하지 말자.

넷. 위력 성폭력 사건의 2차 가해자들에게 투표하지 말자.

다섯. 여성을 비하하는 후보들에게 투표하지 말자.

 

 

2024. 4. 5.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