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성명서

성명서2026. 4. 8. 여성 서명숙의 작은 어깨 위에 앉아 세상을 본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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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여성 서명숙의 작은 어깨 위에 앉아 세상을 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굽이마다 뜨거운 심장으로 길을 내었던 여성,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별세를 깊이 애도한다. 고인은 언론인이자 활동가, 그리고 개척자로서 여성이 세상의 벽을 깨고 어떻게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지를 몸소 증명해 온 선구자였다.

 

서명숙의 청춘은 서슬 퍼런 독재에 맞선 저항의 기록이었다. 대학 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연행되어 236일간 차가운 구금 생활을 견뎌냈던 고인의 시간은, 민주주의를 향한 꺾이지 않는 신념의 뿌리가 되었다. 그 고통의 시간은 개인의 불행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의 자유와 정의를 일구는 밑거름이 되었다.

 

사회의 목격자이자 기록자였던 언론인 서명숙은 날카로운 펜 끝으로 한국 정치의 비루한 현실을 벼려냈다. 시사저널 최초의 여성 편집국장이라는 위치는 단순히 개인의 영광이 아니었다. 남성 중심의 견고한 언론 지형 속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권력을 감시하고, 시대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후배 여성들에게 나아갈 길을 열어준 용기의 상징이었다.

 

인생의 후반전, 고인은 다시 고향 제주의 흙을 밟으며 치유의 길을 내기 시작했다. 거창한 토목공사가 아니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던 옛길을 찾고 마을의 숨결을 잇는 과정은, 파괴적인 개발 지상주의에 맞선 부드럽지만 강한 저항이었다. 그가 만든 올레길은 고단한 현대인들에게 성찰과 위로의 공간이 되었으며,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문법을 제시했다.

 

우리는 이제 고인이 지나오고 가꾸었던 길 위에 서서, 그 작은 어깨를 빌려 세상을 본다. 그 어깨 위에는 시대를 고민하던 청년의 고뇌와, 진실을 쫓던 기자의 치열함, 그리고 생명을 보듬던 여성의 사유가 고스란히 얹혀 있다. 고인이 보여준 삶의 궤적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성이 가진 용기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그 사유가 어떻게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서명숙 님이 남긴 ‘길 위의 정신’을 기억할 것이다. 억압에 맞서고, 진실을 기록하며, 마침내 모두가 평화롭게 걸을 수 있는 길을 내었던 그 마음을 잊지 않겠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가 우리 곁에 남긴 용기와 사유의 길을 따라 우리 또한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2026년 4월 8일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